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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8 (월)

전재학의 교육이야기 7 - 인권의 사각지대를 지우는 교육적 시선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이 다가온다. 이날을 즈음해서는 각종 언론에서 평소 잊고 사는 인권의 의미를 새롭게 다져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과연 이 땅에서는 인권이 살아있고 제대로 보호를 받는 것인가? 처참한 북한의 인권 상황과는 달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는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인권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저절로 얻은 것이 아닌 것음 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듯이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피를 흘려 오늘의 인권을 견지하고 있다. 최근의 12•3 비상계엄의 저지 또한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국민의 적극적인 투쟁 없이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인권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지만, 찻잔 속의 고요한 파문처럼 여전히 제도적 경계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른바 ‘인권의 사각지대’다. 이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법과 행정의 손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사회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침묵 속에서 권리를 잃어간다. 우리는 흔히 인권 문제를 개인의 취약성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정책 설계 자체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일 때가 많다. 우리의 교육 현장 또한 이러한 문제를 결코 비켜갈 수 없다.

 

우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사각지대는 대표적인 구조적 인권 침해 사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의 고용허가제(E-9)가 사업장 변경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어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을 감내하도록 구조적으로 압박한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 ‘이주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2020)’는 “사업장 변경 제한이 인권침해의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경제력에 기반한 노동력 이동이 활발한 사회에서, 다른 것이 아닌 인권만큼은 국적에 따라 차등 대우할 수 없다는 점을 교육은 끊임없이 가르쳐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

 

또 다른 사각지대는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권 문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은 ‘자기결정권’을 장애인의 핵심 권리로 규정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가족 중심의 대리결정 구조에 머물러 있다. 과거 UN 장애인권리위원회(2014·2022)는 두 차례에 걸쳐서 한국에 “지원결정제도(supported decision-making) 도입”을 권고했다. 이는 장애인의 삶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보호의 논리가 때로는 ‘권한을 박탈하는 구조’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교육계가 장애 인권 및 의사결정 다양성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위 두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보호를 명분으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인권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호 중심’ 정책이 아니라 제도적 장벽을 제거하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개혁이라는 사실에 이르게 된다.

 

첫째, 취약 집단을 제도 밖에 두는 부분적 배제 구조를 폐지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사업장 변경을 보다 자유롭게 허용하고, 노동권 침해가 확인되는 경우 즉시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는 ‘긴급 변경 절차’를 법제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기본 조건이다. 이제 우리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한 명실공히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둘째, 지원결정제도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Representation Agreement Act처럼,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원자의 역할을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발달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확대할 뿐 아니라,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커뮤니티 중심의 돌봄체계를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셋째, 인권 사각지대는 복지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 인권영향평가(HRIA)를 의무화하고, 교육•노동•복지•법무 등 여러 부처에 분산된 인권정책을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이 지속가능경영지침(CSDDD)을 통해 인권·환경 리스크를 전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도 같은 흐름이라 할 것이다.

 

교육은 인권의 최종 수혜자인 ‘사람’을 먼저 바라보는 훈련이다. 학교는 제도 밖에 놓인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사회는 어떤 가치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준다. 보이지 않는 곳을 비추는 일이야말로 교육이 가지는 공적 사명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인권의 사각지대는 그 자체로 교육의 실패이기도 하다. 인권을 가르치는 일은 단지 교실 안에서의 수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의 제도 하나하나가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전제, 즉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국가”라는 원칙을 실천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보호의 이름 아래 권리를 제한해 온 전통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권은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침해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공간’이다. 사각지대를 지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며, 그 의무를 실천하기 위한 첫걸음은 교육의 시선으로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데서 시작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