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말을 걸어온다.
2024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10명 중 약 3명이 최근 1년 내 우울감을 경험했다(27.7%). 스트레스 인지율은 42.3%로 전년 대비 5%포인트 뛰었다. 청소년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은 인구 10만 명당 11.7명으로,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여성가족부, '2025 청소년 통계'). 9세에서 24세 사이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1위가 자살이라니. 이 한 문장을 가볍게 읽고 넘기기 어렵다.
자해,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자살. 이 단어들이 청소년의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이 지경까지 몰아넣고 있는 걸까.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분명하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저서 《불안세대》에서 수십 건의 실험 결과를 종합한 뒤 이렇게 결론 내린다. "소셜 미디어 사용은 불안과 우울증, 그리고 그 밖의 질환과 단순히 상관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건 2007년이다. 이후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아이들의 하루가 바뀌었다. 하이트의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십대가 화면 기반 레저 활동에 쓰는 시간이 하루 7시간 이상이다. 학교 수업과 숙제 시간은 제외하고도 그렇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화면 앞에서 보내는 셈이다.
소셜미디어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비교의 무대를 만들어 준다. 남의 하이라이트 씬을 보면서 자신의 비하인드 씬과 비교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친구의 환한 웃음, 인플루언서의 완벽한 일상. 그것이 ‘편집된 장면’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이미 위축된다. 소셜미디어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온라인 '브랜드'를 관리하는 데 의식의 상당 부분을 쏟아야 한다. 그 결과 친구와 가족과 실제로 함께하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정상적인 성장 발달에 필수적인 인간 관계 경험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아이들은 사람과 만나는 법을 잊어갔다. 교실에서 눈을 마주치고, 쉬는 시간에 어깨를 부딪치며 웃고, 갈등을 겪고 화해하는, 이 모든 날것의 관계 경험이 사라졌다. 화면 너머의 소통이 대면 관계를 대체했고, 아이들은 갈수록 사람과 멀어져갔다.
하이트는 이 시대의 아동기를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라 부르며 '놀이 기반 아동기'와 대비시킨다. 자유 놀이와 현실 롤 모델이, 화면 시간과 알고리즘이 선택한 인플루언서로 대체된 세계. 어떤 의미에서 아동은 아동기를 박탈당했다는 것이 하이트의 진단이다.
아이들은 현실 세계가 아닌 가상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메타버스, 온라인 게임, SNS. 그 안에서 아바타로 존재하고, 텍스트로 감정을 전달하고, '좋아요' 숫자로 자기 가치를 측정한다. 겉으로 보면 초연결사회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초연결사회가 아니라 초단절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를 방증하는 현상이 있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청년의 13.1%, 약 540만 명이 힘들 때 AI 챗봇에게 정신건강 조언을 구하고 있다(RAND 연구소, 2025).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을 인공지능에게 털어놓는 시대.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이 현상 자체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아이들 곁에 사람이 없는 건가, 아니면 있어도 마음을 열 수 없는 건가.
하이트는 이 위기의 본질을 이렇게 짚는다. 1996년 이후 태어난 아동이 불안 세대가 된 주요 원인이 두 가지 추세에 있다고.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 무릎이 까지는 건 막으면서 영혼이 멍드는 건 방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해결책을 이야기할 때 출발점은 어른이어야 한다.
우선 화면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한다. 하이트가 강조하듯, 아이들에게는 자유롭게 뛰놀고 갈등을 겪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 경험이 불안에 맞서는 백신이 된다.
소셜미디어 접근 시기를 늦춰야 한다. 뇌에서 보상을 추구하는 부분은 일찍 발달하지만, 자기 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은 이십대 중반이 되어야 완전히 발달한다. 사춘기 아이에게 소셜미디어를 쥐여주는 것은 브레이크 없는 차에 아이를 태우는 것과 다름없다.
대면 관계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족 식사 시간에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 아이의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것, 함께 걷는 것.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회복하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이미 해외에서는 제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주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2025년 12월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세계 최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도 유사한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냐고 물으면, 솔직히 미봉책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만 본다면 미봉책이라도 시급하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나는 2024년 'MINDSOS 마음구조챌린지'의 공식 마음구조대원으로 선발되어 자살 예방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것이 있다.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구하려면 그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화면 너머의 '좋아요'가 아니라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아주는 실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 두 손 두 발 들고 나서야 한다. 아이들이 사람과 멀어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방관이다. 이 시대의 어른이 져야 할 가장 무거운 책임은 아이들을 다시 사람 곁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는 안녕한가?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박근필
· 수의사
· 작가,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 박근필성장연구소 소장
· 청소년 진로 직업 특강 외 다수 출강
· 데일리벳 외 다수 매체 칼럼 연재
[저서]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2023)
· 나는 매일 두 번 출근합니다 (2024)
·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2025)
· 방구석에서 혼자 읽는 직업 토크쇼 (2025, 공저)
[참고 링크]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