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린 날, 잠시 멈춘 걱정들
퇴근길. 창밖으로 행복이 흩날린다. 첫눈이 가져다주는 행복한 설레임이란 언제나 나를 소녀의 감성에 머물도록 만든다. 그래서인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노래 가사가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든다. 따라 부르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집안일을 마친 나는 피곤함에 소파로 다가가 창밖을 바라본다. 여전히 하얗게 내리고 있는 눈을 보며 밖으로 나갈 용기를 내어본다. 사실 최근 바쁜 일정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오늘만큼은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와, 예쁘다!”
어느새 하얗게 바뀌어 가는 세상을 보며, 알 수 없는 행복에 젖어 든다. 눈을 굴리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사진을 찍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어른들의 표정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첫눈이라는 마법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 듯하다.
세상에 떠다니던 모든 걱정을 잠시나마 덮어버린 듯. 하얀색으로... ...
순간 날아갈 듯 가벼워진 나는 하얀 눈을 밟으며 아파트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동네 친구들과 눈싸움하며 신나게 뛰놀던 어린 시절, 첫눈을 맞으며 함께 거닐던 다정했던 시절 등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 둘 씩 떠올리며 행복한 과거로의 여행을 잠시 해보기도 한다.
이렇게라도 잠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 몸은 어떤 변화를 맞을까?
특히 혈액은 우리의 마음 상태와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감정 상태에 따라 우리 몸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혈액 속에는 그 흔적이 남는다. 더군다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혈액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염증 수치가 높아지고, 혈액의 점도가 변하며, 면역세포들의 균형이 흔들린다. 마치 평온했던 강물이 거칠어지듯, 혈액의 흐름도 불안정해진다.
하지만 첫눈 내리는 날, 세상 걱정을 내려놓고 좋은 감정을 느낄 때, 혈액도 비로소 함께 쉬어간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어들고, 혈압이 안정되며, 면역세포들이 제 역할을 찾는 시간이다. 이러한 몇 분의 행복이 혈액에게는 귀중한 회복의 시간이 되는 셈이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 하얗게 변해가는 세상을 보며,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오늘 하루만큼은 걱정을 내려놓고, 내 안의 혈액이 편안히 흐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첫눈처럼 순수한 기쁨을, 혈액처럼 따뜻한 생명을 느끼며.

정영희 작가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 2025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자문위원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