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9 (금)

최홍석 칼럼 - 『존중(尊重)』

크지는 않지만 제법 붐비는 우체국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포 꾸러미와 서류 봉투나 편지 따위를 들고 소포나 등기를 부치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예금 업무를 위하여 창구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대체로 즐겁지 않다. 지루하고 다리도 아프고 앞 사람이 생각보다 지체할 경우 언짢은 생각이 들기 일쑤다. 안내를 하는 직원이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줄의 맨 끝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 차례는 아직도 멀어보였다. 그래서 다가가 도움이 될까하고 물었다. “할머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아니예요. 우표 두 장만 사면 돼요.” “아, 그러시면 저기 자동판매기가 있습니다. 오래 기다리실 필요 없이 동전만 넣고 단추를 누르시면 금방 우표를 사실 수가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우. 허지만 저 기계는 창구의 아가씨처럼 ‘식사는 잘 하는지’ ‘허리 아픈 건 좀 어떤지’ ‘손자 녀석은 잘 있는지’ 이것저것을 자상하게 물어봐 주지를 않잖우.” 누구나 그렇듯이 할머니에게는 우표 두 장 보다도 창구 아가씨의 존중과 친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존중 받고 싶어 한다. 다섯 살배기 손자도 자신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자신이 부른 노래에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몹시 서운해 한다. 그러고 보니 서울 살 때 동네 신경외과 물리치료실이 항상 노인들로 넘쳐나던 생각이 났다. 반면 내 후배의 병원은 그의 실력이 괜찮은데도 불구하고 늘 한산하던 것과 비교가 되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 의사는 의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환자들을 존중했고 친절했다. 외로운 노인들은 자상함이 그리워 병원을 찾곤 했다. 환자들에게는 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신이 존중 받는다는 느낌이라는 걸 오랜 후에야 알았다.

 

강국을 만들고 싶었던 연(燕)나라의 소왕(昭王)이 곽외(郭隗)라는 은자(隱者)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자 곽외는 소왕에게 인재들을 구하라고 하면서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임금이 천리마를 구해 오라고 신하에게 금화 500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3년 만에 돌아온 신하는 죽은 말의 뼈다귀를 싣고 돌아왔습니다. 기가 찬 임금은 그를 당장에 참수하도록 명했으나 신하는 태연히 잠시만 기다리면 천리마를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을 합니다. 과연 오래지 않아 ‘죽은 천리마의 뼈를 금화 500에 샀다면 살아있는 천리마는 얼마를 쳐 주겠는가?’ 하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세 마리나 구할 수 있었습니다.” 힌트를 얻은 소왕은 곽외에게 대궐 같은 집을 지어주고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러자 현자를 존중해 준다는 소문이 퍼지고 인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연나라는 순식간에 강대국이 되었다.

 

사마천의 『오기열전』에 있는 오기(吳起)라는 장수의 이야기를 다시 들춰본다. 춘추전국시대 명장 중 오기라는 인물이 있었다. 어느 날 오기 장군은 심한 종기 때문에 사경을 헤매는 병사의 옷을 벗기고 직접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은 깜짝 놀랐고 이 이야기는 곧바로 병사의 어머니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갑자기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오기 장군은 하급 병사의 고름까지 직접 빨아주는 훌륭한 장수요.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시오?” 병사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오기 장군께서 아들의 종기를 직접 빨아 주었다면 이에 감격한 아들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선두에 서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진에서 죽고 말겠지요. 이 아이는 어느 때 어디서 죽게 될지 모릅니다.”

 

훗날 비평가들은 오기의 이런 일화를 놓고 오기의 다른 행적들과 엮어 지도자의 쇼맨십이라느니 부하를 죽음으로 내모는 잔혹한 처세술이라느니 하는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친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평민들의 마음은 잡곡 서너 말이면 살 수 있지만 선비의 마음은 천금으로도 사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상대에 대한 진심어린 존중만이 그의 마음을 얻는 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남에게 존중받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존중하지 않는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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