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 시간의 엘리베이터 안, 문이 닫힐 때쯤 멀리서 뛰어오는 인기척이 들립니다. 저는 누군지 모를 그를 위해 잠시 기다려봅니다. 고맙다며 수줍은 인사를 건네는 이는 위층에 사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였습니다. 짊어진 가방의 무게로 허리춤까지 내려온 그의 가방이 제 눈에는 안쓰럽게 보이기만 합니다. 아마도 학원에 다녀오는 듯합니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학생을 바라보다 어린 시절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저는 학교가 마치면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들이랑 노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또래뿐 아니라 동네 언니, 오빠들 모두가 친구가 되었습니다.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밖에서 뛰어 놀다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 날은 반찬이 없어도 꿀맛이었고, 신나게 놀았기에 피곤함으로 일찍 꿈나라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꼬마 숙녀와의 짧은 눈 맞춤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저는 집으로 들어옵니다. 불이 켜진 아이 방을 조심스레 열어봅니다. 시험 준비로 요즘 피곤하였던지 교복을 입은 채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씻고 자라고 하고 싶었지만, 항상 잠이 부족한 아이라 조용히 불을 끄고 나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언제 행복할지 혼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곁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를 거의 잊다시피 살아가는 공기만큼은 아닐지라도,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언어도 그 존재감을 크게 인식하지 못한 채 국어생활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한 해를 한 달 남겨 놓은 이 자리가 ‘나의 국어생활은 어떠했나’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면 좋겠다. 국어 전문가로서 여러 활동들을 하다 보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지만 가끔 맥이 좀 빠지는 일도 겪게 된다. 그런 일 중 하나가 맞춤법이나 문법을 소홀히, 적당히 생각하는 태도를 만나는 것이다. 계도하거나 훈계를 하려는 태도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이는 그럴 수도 있겠다, 또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상대방의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함을 알기 때문이다. 문서 작성 강의를 다니다 보면, 아래 (1)과 같이 ‘쌍점’을 기준으로 하여 한 단어인 ‘일시, 장소’의 띄어쓰기를 조정하여 위치를 맞추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러한 디자인적 요소(?)도 그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 특히, 포스터나 현수막같이 디자인적 요소를 고려하게 되는 경우는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공적 문서 같은 경우에서는 (2)와 같이 맞춤법에 따라, 즉 한 단어는 붙이고 각 단어는 띈다고
미국 나다니엘 호돈의 단편 『큰 바위 얼굴』에서 주인공 어니스트는 늘 산 위에 새겨진 거대한 얼굴을 바라보며 자란다.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 저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니스트 스스로 그 얼굴을 마음에 새기며 자신을 갈고닦아 결국 그 모습을 닮아 간 과정이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스승 빈곤의 시대’를 떠올리면, 이 이야기는 마치 지금의 교육을 위해 쓰인 우화처럼 읽혀진다. 아이들은 늘 누군가 인생의 모델을 바라보며 자란다. 문제는 이제 그들이 바라볼 ‘큰 바위 얼굴’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는 첨단 기술과 콘텐츠로 가득해졌지만, 아이들이 정작 갈망하는 건 지식보다 삶의 방향을 보여줄 한 사람이다. 페스탈로치가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손에 흙을 묻히며 “사랑은 교육의 기초”라고 말했던 것처럼(『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1781), 참된 교육은 말보다 삶의 증명에서 비롯된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제자에게 “학문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고 가르친 것(『다산시문집』)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시대가 달라도, 위대한 스승은 모두 제도의 언저리가 아닌 삶의 중심에서 가르쳤다. 그러나 오늘의 학교
어느 가난한 유대인이 500루블이 들어 있는 지갑을 주웠다. 회당에 간 그는 그 마을 최고의 부자가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찾아주는 사람에게 50루블을 보상금으로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주인을 찾아 지갑을 돌려주었다. 지갑을 살펴본 부자가 말했다. “자네가 이미 보상금을 떼어 갔구먼.”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요?” 가난한 유대인이 물었다. “내가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이 지갑에는 550루블이 들어 있었다네.” “그렇지 않았는데요.”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싸우다 랍비에게 갔다. 두 사람은 랍비에게 사정을 설명하였다. 부자가 말했다, “랍비께서는 저를 신뢰하신다고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랍비가 대답하였다. 부자는 미소 지었고 가난한 유대인은 실망했다. 랍비는 부자에게 지갑을 달라고 하더니 가난한 유대인에게 주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부자가 화가 나서 물었다. “당신 말대로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당신이 550루블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 사실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 지갑을 주운 사람이 거짓말쟁이이거나 도둑이었다면 당신에게 돌려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도 거짓말쟁이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지갑은 당신
최근 주요 경제 신문(서울경제, 2025. 11.26.)에서는 “‘최저임금’ 일자리에 … 직업계고 학생들 ‘다시 대학으로’”라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기사에 의하면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률 및 진학률이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최근 직업계고의 4년간 취업률은 57.8%→55.2%로 매년 하락하는 반면에 대학 진학률은 같은 기간 45.0%→49.2%로 상승해 전체 졸업생의 절반에 육박했다. 올해 진학자는 전문대학 1만 5648명(진학자 중 53.3%), 일반대학 진학자는 1만 3725명(46.7%)였다. 이는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고졸 취준생’의 선택지가 좁아지자 대학으로 눈을 돌리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최저임금 일자리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위에서처럼 직업계고 학생들이 다시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은 단순한 진학 경향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제시한 ‘직업의 사다리’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음에 가깝다. 몇 해 전, 교육 언론에 소개된 직업계고 기계과 학생의 인터뷰 내용이 떠오른다. 그는 전국 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한 실력파였고, 재학 중 현장실습에서도 높은 평가를
롯데장학재단(이사장 장혜선)은 지난 25일(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스카이31 컨벤션에서 <제2회 신격호 롯데 청년기업가대상>의 결선 및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번 청년기업가대상은 1분야(△식품 △유통 △화학 △건설 △문화 △관광 △서비스 △금융 △소셜벤처 △기타)와 2분야(△AI △반도체 △바이오헬스 등 딥테크 및 국가전략기술 △과학기술기반)로 나누어 진행됐으며, 총 380개 스타트업이 참가하는 등 높은 관심도를 기록했다. 이후 각 분야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통해 예선, 본선 및 멘토링이 진행되었으며, 지난 4일 최종 결선 진출팀이 선정됐다. 결선에 오른 17개 팀은 이날 대면심사에서 그동안 준비한 사업모델을 발표하며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1분야에서는 ‘푸코스클린팩토리’, 2분야에서는 ‘이노맥신’이 각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상 2개 팀에는 각 1,4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되었으며, 이어 최우수상 4팀과 우수상 4팀에는 각각 900만 원, 600만 원의 상금이, 장려상 4팀에는 각 300만 원의 상금이 전달됐다. 또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특별상 2개 팀과 한국기업가정신재단 유동훈 특별상 1개 팀에게도 각각 150
2026학년도 대학 입학을 위한 수능 시험이 지난 목요일에 완료됐다. 수능 날 아침이면 대한민국의 시계는 늘 고3 학생들을 향해 돌아간다. 도시 전체가 시험장으로 변하고, 모든 뉴스가 ‘수험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만큼 수험생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뜨겁기만 하다. 수능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한동안 수험생을 위한 각종 이벤트를 실시한다, 어디를 가도 수험생들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 지속된다. 그러나 그날, 누군가의 열아홉은 시험장에 있지 않다. 영화 〈3학년 2학기〉가 보여준 장면처럼, 특성화고(실업계고)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이른 새벽 버스에 몸을 싣고 취업 현장으로 향한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만든 부품이 문제없이 돌아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가고, 또 어떤 학생은 고객 컴플레인을 막기 위해 매장에 먼저 출근한다. 그들은 같은 나이지만, ‘수험생’이라는 말을 허락받지 못한 또 다른 열아홉이다. 이 장면은 우리 교육이 여전히 한 가지 잣대로만 청소년의 삶을 바라보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입 중심의 시선”이라는 잣대는 너무 강력해서, 그 틀에 들지 않는 청소년들은 쉽게 가려지고, 종종 ‘관리의 대상’으로만 머물게 된다. 하지만 우
말 한마디가 만드는 헌혈의 온도 헌혈의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사뭇 다릅니다. 그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 또한 저에게 다르게 다가오지요. '어떤 이유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을까?'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처음 헌혈을 하러 오셨거나 오랜만에 하시는 경우, 궁금증은 조금씩 커집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소중한 피 한 방울, 그 결정 뒤에는 각자의 이유와 선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감 시간이 임박해 급하게 들어오는 중년의 남성분, "끝났나요? 지금 할 수 있어요?" 헌혈이 가능한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혹시나 하는 웅크렸던 마음이 그제야 놓이는지, 안도의 표정을 짓습니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헌혈하는 동안에도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시는 걸 보면 오히려 제가 죄송해집니다. 지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가시려는 그분께 괜찮다며 마음 편히 계시라고 하지만, "간호사님들도 어서 퇴근하셔야죠!" 라며 환한 미소를 보이는 배려에 가슴 한편이 훈훈해집니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문자를 받고 왔어요. 바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야 할 것 같아서요." 문자 한 통에 달려와 주시는 마음, 환자의 절실함을 외면하지
농번기 철이 되면 농사짓는 우리 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나와 동생도 농사일에 동원되었다. 잔심부름 정도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꽤 요긴하게 쓰였다. 모내기가 절정에 다다랐던 어느 날, 동생은 주막에 가서 인부들의 술을 사오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떠났다. 그러나 예상했던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초조해진 아버지는 2차로 나를 보내서 알아보도록 하셨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서 주막으로 향하던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지금쯤 구슬땀을 흘리며 돌아오고 있어야 할 동생은 주전자를 팽개친 채 냇물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유인즉 부지런히 심부름을 가고 있노라니 냇물 속에 솥뚜껑만한 자라가 물풀에 걸려 허둥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힘을 합하면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나도 합류를 했다. 그리하여 자라 체포에 나섰고 시간은 흘렀다. 멀리서 지르시는 아버지의 노한 고함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자라의 행방을 좇았고 그날 동생과 나는 죽도록 혼이 났다. 레리 L 릭텐월터가 쓴 『잘 박힌 못』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미국인이 인디언 친구와 함께 맨해튼 시내를 걷고 있었다. 대도시의 소음과 들끓는
[대한민국교육신문] 경기도교육청이 ‘2025 대한민국 지방시대 엑스포’에 참여해 경기미래교육을 널리 알린다. 미래교육의 표준을 추구하는 경기도교육청의 주요 교육정책과 우수사례를 체험형 전시 공간으로 마련해 교육공동체의 정책 체감도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행사는 지방시대위원회, 행정안전부, 산업통산부, 울산광역시가 주최하고 중앙부처와 시도교육청, 시도 및 지방의 4대 협의체 등이 참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정책 박람회다.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총 3일간 울산광역시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하며, 지방분권과 균형성장의 정책 비전과 지역 혁신 사례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로 평가된다. 도교육청은 전시관 주제를 ‘배움의 깊이는 온(ON)! 경계는 오프(OFF)! 미래교육의 표준 경기교육!’으로 선정했다. 경기미래교육의 혁신 모델을 직접 체험하고 참가자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전국 최초로 도입해 운영 중인 ‘하이러닝 AI 서·논술형 평가시스템’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기반의 학습 피드백과 서·논술형 평가 과정을 시연하고,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지역사회 협력으로 학생 맞춤형 성장을 지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