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의사이자 글 쓰는 사람이다. 수의사로 살다 보면 낯선 케이스를 자주 만난다. 처음 해보는 시술, 익숙지 않은 증상, 예상과 다른 반응. 처음엔 손이 떨린다. 두 번째엔 조금 덜 떨린다. 세 번째엔 요령이 생긴다. 그렇게 실력이 쌓인다. 시행착오가 곧 성장이다. 실패 없이 실력이 늘 수는 없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작가로서 항상 좋은 글을 쓸 순 없다. 특히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더 그랬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 형편없다 싶은 글도 수없이 썼다. 그런데 어느 날 알았다. 내 글이 구려 보인다는 건, 더 나은 글이 어떤 것인지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는 걸. 그 불만족이 나를 다음 단계로 밀어올리는 신호였다. 쓰지 않았다면 나아질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때 필요했던 게 바로 이 정신이었다. 지금 소개할 두 글자. Not Yet. 스탠퍼드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 교수는 성장 마인드셋 연구에서 미국 시카고의 한 고등학교 사례를 소개한다. 그 학교는 낙제 점수를 'F(Failed)'가 아닌 'NY(Not Yet)'로 표기한다고 한다. '실패'가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다. 두 글자의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그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이 말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는 왜 중요할까. 모든 것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모르면 막막해서 시작 자체를 미루게 된다. 혹은 열심히는 하는데 방향이 엉뚱해진다. 노력은 했는데 남는 게 없는 이유다. 더욱이 인공지능 시대라 메타인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인공지능 활용의 시작은 명령어, 다시 말해 질문 입력이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먼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메타인지가 곧 질문력이다. 학습이 하루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생에겐 특히 더 중요하다. 수학 공부를 예로 들어 보자. 메타인지가 높은 학생은 "이 단원 개념은 아는데 응용이 약하다"처럼 자신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안다. 그래서 모르는 부분, 약한 부분 위주로 공부하고, 시간도 그쪽에 더 쓴다. 남들과 같은 1시간을 공부해도 결과가 다른 이유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팀장이라고 하자. 팀장이라고 모든 영역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메타인지가 높은 팀장은 자기 약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 부분은 잘하는 팀원이나 인공
현대는 경쟁 시대다. 그것도 무한 경쟁. 예전엔 내 주위 사람들하고만 경쟁하면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초연결사회라 경쟁도 글로벌적으로 한다. 전혀 보이지 않는, 누군지도 모를 지구 반대편 사람과도 경쟁을 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엔 단순 경쟁력만 갖춰선 불안하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력이 필요하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다음 다섯 가지 힘, 이른바 '5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1. 실력 - 모든 것의 출발점 실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내 능력과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없다. 아무리 자기 홍보를 잘해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실력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불교 용어 중에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다. 어느 순간 깨닫고, 그 이후 끊임없이 반복하며 익혀나가는 것. 한 번 배웠다고 끝이 아니다.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해야 진짜 실력이 된다. 실력은 깨달음보다 축적의 결과에 가깝다. 2. 체력 -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기반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다른 요소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무용지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체력은 두 가지다. 첫째는 신체 체력이다. 근육이 있어야 쉽게 지치지 않는다.
나는 왜 인턴을 그만두고 회사원이 되었나 나는 고등학생 때 내 진로를 스스로 정했다. 수의사였다. 내 천직일 거라 생각했고 확신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운 좋게 수의대에 입학했고, 졸업 후 동물병원 인턴으로 취직했다. 자신만만하게 들어간 병원, 앞으로 탄탄대로일 것 같은 내 길. 현실은 달랐다. 매일 원장님에게 꾸중 받기 일쑤였다. 비수의사인 직원보다 일 처리가 늦고 미숙했다. 서투르고 실수투성이였다. 예컨대 검사를 위한 보정을 잘하지 못해 반려동물이 움직여 검사가 지체되기도 했고, 약을 각 포마다 고르게 배분하지 못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고 자신감도 있었던 터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내가 고작 이 정도였나. 자괴감과 수치심마저 들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지하까지 뚫고 내려갔다. 급기야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천직은 무슨,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난 이 일에 소질도 재능도 없구나. 결국 1년도 채 안 되어 병원을 그만뒀다. 그렇게 나는 어느 제약회사의 회사원이 되었다. 그런데 회사원의 삶은 내 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나름 안정적이긴 했지만 여전히 '이게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일까?'라는
다들 질문이 중요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얼핏 보면 이상하다. 답을 찾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는 게 더 필요한 거 아닌가. 예전엔 맞았고 지금은 틀렸다. 예전엔 주어진 문제에 답만 잘 찾으면 성공하고 출세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답은 인공지능이 더 잘 찾는다. 사람보다 몇백 배는 더 빨리 찾는다. 정답 찾기를 인공지능과 경쟁해서는 백전백패라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가 살던 20세기보다, AI가 답을 독점한 지금 이 말은 훨씬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럼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나. 질문을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기존에 있던 질문을 다르게 봐야 한다. 비틀어보고 뒤집어보고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봐야 한다. A분야의 질문을 그 분야에 한정짓지 말고, 전혀 다른 B분야의 렌즈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해결책이 나온다.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값을 얻는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롭고 낯선 것을 연결하고 조합하는 것, 그게 창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언제나 질문이다. 질문에는 나쁜 질문이 없다. 다만 질문의 깊이와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