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대한민국 교육은 어느 해보다 격변 속에 놓여 있었다. 학령인구의 급감은 학교 체제 전반을 흔들었고, AI 학습 도구의 급속한 도입은 교실의 역할과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지역 간 교육격차는 오히려 심화되며 “출생지에 따라 학업 기회가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이에 대해 수많은 논의와 대책이 쏟아졌지만, 정책의 파편화•임기응변식 접근은 현장의 피로만 증가시켰다. 결국 교육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임에도, 우리는 그 방향에 대해 충분히 합의하고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올해 특히 아쉬움이 컸던 정책 중 하나는 학교 재구조화에 관한 논의이다. 농산어촌 학교의 통폐합이 빠르게 추진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성과 공동체성, 그리고 학생들에게 제공될 교육적 대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전남의 한 소규모 중학교는 통폐합을 앞두었지만, 오히려 지역 대학•기업과 협력하여 ‘작은 학교’의 장점을 살린 프로젝트 기반 수업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범 사례는 정책적 지원이 아닌 학교의 자구적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문제는 학교의 규모가 아니
십수 년 전 필자가 고교 3학년 담임으로 근무하던 시기에 한 여학생은 초중고 총합 12년을 통해 남자 담임은 처음이라고 고백했다. 물론 교직의 여초(女超)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은 필자 자신이 현장에서 느끼기도 했지만, 교육의 대상인 학생인 직접 느끼고 일종의 개인적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에는 “그럴 수가?”라며 심각한 교사의 성별 불균형 상태에 대해 깨달았다. 이는 밤늦게까지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는 고3 학년부장을 역임하면서도 교무 분장에서 학년 담임 배정 요구 시에 남성 교사를 소속 학년에 함께 하기가 여간 힘들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갈수록 심화 되어 이제는 남성 교사는 각 학년의 ‘천연기념물’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여초 현상이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 초·중·고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성별 불균형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예컨대, 한 학교에서 학년 담임교사 10명 가운데 남성 교사가 1명에 불과하거나, 아예 전무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단순한 인력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의 성장 환경과 교육의 질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존재를 넘어 학생이 일상적으로 접
중국 춘추 전국시대를 살았던 ‘공손앙(公孫鞅)’은(BC390-BC338) ‘상앙(商鞅)’ 혹은 '위앙'(衛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위(衛)나라 출신이었으나 여기 저기 떠돌다 진(秦)나라로 건너가 효공의 눈에 들어 조정의 실권을 쥐게 된다. 그리하여 가족 제도 개편, 중농 억상정책 실시, 토지 제도의 개편과 세제 개혁, 군주권 강화, 그리고 귀족의 특권 제한과 인민의 신분 상승 기회 개방 등 여러 가지 법안을 마련하여 진나라의 생산력과 군사력을 크게 신장시킨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기타 열국이 대적하기 힘들 정도로 강대국이 되었다. 결국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한다. 천하통일에는 묵가의 공도 있었지만 상앙이 큰 역할을 했다. 그의 개혁은 엄격한 법의 시행에 기초를 두고 있었는데 개혁 당시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을 초래했으며 효공에게는 전국에서 올라오는 상소가 산더미 같았다. 그러나 상앙은 흔들리려는 효공을 독려하여 변법을 늦추지 않았고 이에 반발하는 사람을 가차 없이 처형하였다. 심지어는 공자 ‘건’이 법을 어겼다고 하여 코를 자르는 형벌(刑罰)을 가했고 태자의 스승에게는 얼굴에 죄명을 새기는 형을 가했다. 조량(趙良)이라는 숨은 현자가 조목조목 충고를 하였으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이자 유학자로 한국 역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가 남긴 300여 권의 저서 중에는 『경제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가 대표적이며 이는 후세의 공직자들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그가 전남 강진 땅에서 18년을 유배 생활하면서 길러낸 제자들은 그와 함께 왕성한 저술 활동에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는 그가 한국 교육에 남긴 족적을 살펴보고 이 땅의 교육에 사표(師表)로 삼고자 한다. 한국 교육은 3년마다 치러지는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와 대학 진학률 등 외형적 지표에서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였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도 해외에 나가면 한국 교육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최근의 교육부 업무 보고에서 밝힌 바 있다. 과거 오마바 미국 대통령도 “한국 교육을 보라”며 높은 교육열과 수준 높은 교사들이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로서의 역할을 실행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외 교육 현장 안팎에서는 한국 학생들의 배움의 즐거움 상실, 과도한 경쟁, 심화되는 교육격차와 같은 구조
최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알려진 내용은 미래의 한국 교육과 교육재정의 공정성에 강한 개혁의 필요성을 제공했다. 교육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는 7200억원을 일반 지원한 반면, 나머지 9개 거점 국립대는 평균 2980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다섯 손가락 가운데 엄지손가락만 많이 주는 이유가 뭔가? 잔인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 같은 신체의 지체인데 유독 엄지손가락에만 차별화를 둔 결과는 어떤가? 그에 합당한 인재들을 배출하여 이 나라 발전에 차별화를 크게 상쇄할 만큼의 보탬이 되었는지는 심각한 질문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동안 특혜를 받고 배출된 엘리트들의 사회적 일탈과 악영향을 통해 반드시 교육재정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사유로 지역 거점 국립대에 머물렀던 유능한 인재들에게 끼친 차별 대우에 대한 부당함과 함께 그들의 성장에 제한을 초래한 교육에 깊은 성찰을 요구하게 된다. 서두에서 밝힌 업무보고 자리에서 교육부 차관은 "서울대는 법인이니까 (교육부가) 통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서울대를 제외한 국립대가 많다 보니까 전체 예산을 편성한다"라면서 "아무래도
멈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멈춤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 역시 생각지 못한 순간에 멈춤과 함께 하게 되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남편과 함께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운영하던 학원이 멈춰 섰다. 생각하기도 힘든 시간, 우리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던 터전이, 우리 부부가 힘들게 일구어 놓은 장소가 한순간에 멈춰버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단지 학원만 멈추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통장의 흐름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웃음소리도 함께 멈춘 시간들... ... ‘각자 일하고 있었더라면 달라졌을까?’ ‘아이들 교육비는 어떻게 하면 좋지?’ 말수가 없는 남편의 마음은 미처 헤아리지도 못한 채, 나는 그저 함께 일하고자 했었던 결정이 마냥 후회스러웠다.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지금 돌아보면 미안한 감정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만 하다. 하지만 당장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들의 학원비조차 빠듯했던 시간들 사이에서 남편의 감정마저 살뜰히 돌보기란 힘든 일이었다. 단지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면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내 머리에 맴돌았다. 아이들의 꿈을 부모로서 도와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할 때면 그저 주저앉고만 싶었다.
침묵이 건네는 위로 멀리서 녹색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있다. 추위를 피해 뛰어가려던 내 발자국은 멈추어지고, 느린 걸음으로 횡단보도 앞에 선다. 다시 움직임을 허락할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길 기다리며 잠시 상념에 젖어본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며 걷기도, 뛰기도 때로는 멈추기도 하는 도로 위 신호등, 우리의 인생 역시 어쩌면 보이지 않는 신호에 기다리고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념의 끝에 어느 후배의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후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근무 중 예상치 못한 그녀의 소식을 듣고 나 역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일상의 시작이 순간 무너져 내렸을 그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아려왔다. 이별은 늘 우리에게 아픔을 가져다준다. 특히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면 그 상처는 너무나 오랜 시간, 깊은 흔적을 남긴다. 추운 날씨,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는 혼자 슬퍼할 후배를 생각하며 한걸음에 장례식장을 찾았다. 며칠 만에 수척해 버린 얼굴, 아직 미혼, 외동딸로 곱게 자란 그녀라 장례식장에 혼자였지만 생각보다 잘 이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당신들은 퇴근 후 집에 들어갈 때 엘리베이터를 탈까 계단으로 올라갈까 궁리를 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에게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하반신이 불구인 나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화장실을 찾아 헤매고 2층에 있는 식당을 가지 못해 좌절하며 돌아섰습니다. 나는 한 때 이런 처지를 비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하던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는 장래가 유망하던 목사였습니다. 어느 해 청년들을 데리고 캠프에 참가했는데 마치는 날 폭포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목뼈가 골절되는 바람에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선배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나는 티슈 한 장을 뽑기 위해 꼬박 7년을 피나는 연습을 했다네. 티슈 한 장을 뽑기 위해서 말일세.’ 여러분, 당신들에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열망일 수 있습니다. 한 순간도 한 가지 일도 아무 생각 없이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낭비도 해서는 안 됩니다.” 강연을 듣는 내내 숙연해졌다. 오늘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꽤 비싼 음식을 먹으면서도 맛이 별로라고 투덜거리고 구직을 위해 수백 통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가슴 태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법 괜찮은 직장
옥스퍼드 사전은 2025년 ‘올해의 단어’로 ‘분노 미끼(rage bait)’를 선정했다. 이는 온라인에서 클릭 수와 참여도를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분노를 자극하는 콘텐츠를 뜻한다. 작년의 단어가 ‘뇌 썩음(brain rot)’, 즉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온라인 콘텐츠 과잉 소비 현상을 의미한 것을 고려하면, 두 단어는 오늘날 디지털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불안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점점 ‘자극과 분노’ 중심의 정보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더 이상 교육이 뒤따라갈 수 없다는 절실한 경고라 할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우리 사회는 온통 가짜뉴스와 거짓말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민주국가에서 개인의 권리만을 향유하고 책임은 도외시하는 극단적인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례로 올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12•3 비상계엄의 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 채상병 특검 등의 수사만 보더라도 그동안 온갖 거짓말과 의도된 가짜뉴스는 국민의 알 권리를 극도로 끌어올릴 만큼 분노를 유발해 왔다. 그렇다면 교육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먼저 ‘분노 미끼’에 흔들리는 사회, 왜 교육이 나서야 하는지를
지구상의 국가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의 국가는 단연 프랑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일찍이 인류 문명사에 인권에 대해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한 역사적 인권 관련 사건과 그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이 그를 충분히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인간의 자유를 최선두에서 지켜나가는 프랑스에서 최근 이해하기 어려운 교육적 사건이 의외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꿈꾸는 미래 교육이 어떤 것인지를 절실하게 사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충분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 전면 금지’라는 말은 권위주의적 통제의 상징처럼 들리곤 했다. 대한민국의 국가 인권위원회마저 학교에서의 과도한 규제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프랑스는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유치원·초·중·고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을 원칙적으로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정책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교육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적 선언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 배경에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시간을 되돌려주기 위한 선택이란 것이다. 프랑스 교육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