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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1 (목)

최홍석 칼럼 - 곡식과 잡초

요즈음은 다소 시들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원주택과 전원생활은 중년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푸른 잔디 마당과 빨간 장미 울타리, 푸성귀로 넘쳐나는 풍성한 식탁, 발갛게 타오르는 벽난로..... 그래서 정년을 앞둔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전원으로 떠났다. 더러는 꿈꾸던 대로 만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많은 이들은 2년여가 지난 후 다시 도시로 돌아왔고 전원주택은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 아주 살기 위해 갔던 사람이나 주말 주택으로 이용하려던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전원생활을 포기하게 된 이유로 꼽는 첫 번째가 잡초와의 싸움이다.

 

저항시인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가 있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물론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중들의 저항정신을 풀의 끈질긴 생명력에 빗댄 시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풀의 생명력은 실로 놀랍다. 장마 전까지는 그럭저럭 일진일퇴를 되풀이할 수 있지만 장마가 시작되면 전황(戰況)은 돌변한다. 엄청난 속도로 자라는 풀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모두들 지쳐 항복한다.

 

스승이 공부를 마치고 하산하는 제자들을 떠나보내며 10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열심히들 살거라. 10년 후 오늘 이곳에서 만나자. 다시 만날 때는 이 너른 들판의 잡초들을 남김없이 뽑아 놓아라.” ‘무슨 수로 이 잡초들을 제거한단 말인가?’ 제자들은 걱정을 하며 떠나갔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제자들이 돌아와 보니 스승은 보이지 않고 들판은 누런 곡식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곳에는 팻말이 하나 서 있었고 거기에는 스승의 글이 씌어 있었다. “잡초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곡식을 심는 것이다.”

 

제자들이 미덥지 못한 스승은 자신의 가르침을 매조지하고 싶었고 그러한 스승의 생각을 제자들은 알아차렸다. 곡식들이 없는 곳에는 잡초가 우거진다.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선이 침묵하면 악이 득세하게 된다. 성서는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다.”고 말한다(잠언 25:26). 혹자는 세상이 어두운 것은 악한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선한 사람이 침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에밀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마틴 니묄러의 『나는 침묵했습니다.』라는 글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독일에 처음 나치가 등장했을 때 처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사회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때도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노동운동가들을 잡아갔습니다. 나는 이때도 역시 침묵했습니다.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톨릭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가톨릭이나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내 이웃들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뭔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내 친구들이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내 가족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이야기 해줄 사람이 ...”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