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1.2℃맑음
  • 강릉 7.4℃흐림
  • 서울 4.2℃맑음
  • 대전 3.1℃흐림
  • 대구 6.8℃흐림
  • 울산 8.2℃흐림
  • 광주 4.7℃흐림
  • 부산 8.8℃흐림
  • 고창 4.1℃구름많음
  • 제주 9.0℃흐림
  • 강화 2.0℃맑음
  • 보은 2.5℃흐림
  • 금산 3.2℃흐림
  • 강진군 5.6℃흐림
  • 경주시 7.6℃흐림
  • 거제 8.8℃구름많음
기상청 제공

2025.12.24 (수)

최홍석 칼럼 - 부메랑

중국 춘추 전국시대를 살았던 ‘공손앙(公孫鞅)’은(BC390-BC338) ‘상앙(商鞅)’ 혹은 '위앙'(衛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위(衛)나라 출신이었으나 여기 저기 떠돌다 진(秦)나라로 건너가 효공의 눈에 들어 조정의 실권을 쥐게 된다. 그리하여 가족 제도 개편, 중농 억상정책 실시, 토지 제도의 개편과 세제 개혁, 군주권 강화, 그리고 귀족의 특권 제한과 인민의 신분 상승 기회 개방 등 여러 가지 법안을 마련하여 진나라의 생산력과 군사력을 크게 신장시킨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기타 열국이 대적하기 힘들 정도로 강대국이 되었다. 결국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한다. 천하통일에는 묵가의 공도 있었지만 상앙이 큰 역할을 했다.

 

그의 개혁은 엄격한 법의 시행에 기초를 두고 있었는데 개혁 당시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을 초래했으며 효공에게는 전국에서 올라오는 상소가 산더미 같았다. 그러나 상앙은 흔들리려는 효공을 독려하여 변법을 늦추지 않았고 이에 반발하는 사람을 가차 없이 처형하였다. 심지어는 공자 ‘건’이 법을 어겼다고 하여 코를 자르는 형벌(刑罰)을 가했고 태자의 스승에게는 얼굴에 죄명을 새기는 형을 가했다. 조량(趙良)이라는 숨은 현자가 조목조목 충고를 하였으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효공이 승하하고 태자가(혜문왕) 즉위하였다. 평소에 상앙에게 증오를 품고 있던 이가 왕이 되었고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대역 죄인이 되었고 밤중에 도망을 하여 국경을 넘으려 하였으나 그가 전일에 시행했던 엄격한 법으로 인해 도망자를 재워주는 곳도 없었고 이웃 간의 상호 감시체계 때문에 도망 길마저 쉽지 않았다. 결국 자기가 만든 법을 자기가 어기려고 했으며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자기의 목숨이 위험해지게 되었으니 여기에서 '작법자폐'(作法自斃)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가까스로 위나라로 탈출하였으나 상앙 덕분에 최강대국이 되어 있던 진나라를 두려워한 위나라가 그를 잡아다 진나라에 넘겼고 그는 죽임을 당한 후에 거열형(車裂刑- 다섯 마리의 소에 의에 사지가 찢기는 형벌)에 처해졌다. 제갈량이나 사마천 등을 비롯한 후세가 그의 가혹한 정치를 비난하였거니와 그 가혹함은 부메랑이 되어 그에게로 돌아갔다.

 

지독히도 사이가 나쁜 고부가 있었다. 남편이자 아들은 그 사이에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가 눈물로 넋두리를 하며 ‘내가 빨리 죽어야지’ 해대고 아내는 아내대로 퇴근하는 남편이 누구에게 먼저 가는지를 엿보고 있다가 종일 쌓인 원한을 쏟아 내었다. 하루는 결심을 한 남편이 아내를 불러놓고 말했다.

 

“여보, 이대로는 정말 견딜 수가 없으니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당신은 포기할 수 없소. 어머니는 사실만큼 사셨으니 돌아가셔도 될 것 같소. 내가 들으니 노인들에게는 밤이 아주 해롭다고 하오. 밤을 많이 먹으면 위가 두꺼워져 소화가 안 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고 하니 어머니에게는 불효이지만 이대로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소.” 반신반의 했지만 아내는 그 다음날로부터 시장에 가 토실토실한 밤을 사기 시작했고 매일 한 소쿠리씩 어머니 방에 삶은 밤을 가져다 놓았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꿍꿍이인가 의심하던 어머니는 태도가 차차 부드러워지고 동네 노인들을 만나 밤을 나눠 먹으며 며느리가 매일 밤을 삶아준다고 얘기했다. 동네 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집 며느리를 칭찬하며 부러워했고 무성한 소문은 당사자인 며느리의 귀에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하루는 아내가 근심스런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큰 일 났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려는지 식사를 잘 안하세요.” “그거야 당신이 원하던 바가 아니요?”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밉지가 않단 말예요” “하하하, 밤 때문에 죽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간식으로 밤을 매일 드시니 입맛이 없는 것이지” 그 후로 고부간의 갈등은 사라지고 서로 아끼고 위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며느리는 진심으로 애통해 했다. 내가 하는 선행이든 악행이든 그 모든 것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온다. 더구나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자까지 달고서 돌아온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