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제자가 오래 신어 구멍이 난 고무신을 버리고 새 신발을 샀다. 싱글벙글하며 기분 좋아하는 제자에게 스승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너무하십니다. 겨우 고무신 한 켤레를 가지고 꾸중을 하십니까? 그것도 몇 년 만에 샀는데요.” 제자가 볼멘소리를 하자 스승은 언성을 높였다.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라고, 고무신 한 켤레가 얼마나 두려운 줄 모르는구나. 새 신을 신다보면 자연 새 양말을 찾게 되고, 새 양말을 신으면 새 옷에 눈이 가게 된다. 그뿐이겠느냐? 새 신발에 새 양말, 새 옷까지 입고 나면 어느새 마음도 슬며시 들떠서 자꾸 바깥출입을 하게 된다. 그러면 어찌 공부가 되겠느냐?”
아직도 납득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제자에게 스승의 훈계는 계속 되었다. “그렇게 옷차림을 말쑥하게 하려면 책보다는 거울을 한 번 더 보게 되고 그러면 마음공부는 이미 글러버리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고무신 한 켤레가 어찌 두렵지 않겠느냐?” 나도 그 제자처럼 스승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안 드는 바는 아니나,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모름지기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교훈쯤으로 공감되는 바가 크다. 문제는 고무신 한 켤레의 값이 얼마냐 하는 것보다 그것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 또는 그것에 어떻게 마음을 쏟느냐를 스승은 가르치고 싶었을 것이다. 다음의 두 일화를 비교해 보면 그 교훈은 보다 명확해 진다.
간디는 어느 날 출발하려는 기차에 바삐 오르다 그만 신발 한쪽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고 기차는 바로 출발을 하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빌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간디는 남은 한 쪽을 급히 벗어 창밖으로 힘껏 던졌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에게 빙그레 웃으며“신발은 이미 선로에 떨어졌고 기차를 멈출 수는 없으니 나에게는 쓸모가 없어졌소. 그렇다고 한쪽뿐인 신발을 누군가 주워본들 쓸모가 없을 것이오. 그래서 누군가 줍더라도 쓸 수 있었으면 한 것이오.” 했다한다.
한편 어느 시골 장날에 더벅머리 총각이 그동안 열심히 모은 재산을 털어 송아지 한 마리를 샀다. 잘 길러서 장가 밑천이라도 삼을 부푼 꿈을 꾸었으리라. 그러나 장날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도둑과 소매치기 노름꾼들이 모여들었고 노련한 도둑이 총각과 송아지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를 알 리가 없이 맘에 드는 송아지를 산 총각은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서둘러 집을 향했다.
장터에서 집을 가려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부지런히 걸어 산길로 접어드는데 길가에 새 고무신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신어보니 본래 자기 것이었던 양 꼭 맞았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주위를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나머지 한 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아쉬움에 만지작거리던 신발을 풀 섶으로 던져버렸다. ’아쉽기는 하지만 한 짝으로는 쓸모가 없지. 에잇! 좋다가 말았구나.‘ 그리고는 송아지를 몰며 부지런히 고개를 넘었다.
이윽고 숨이 턱에 차오르고 이마에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힐 즈음 고개 마루에 있는 정자에 도착했다. ’송아지야, 너도 힘들지? 여기서 잠깐 숨이나 돌리고 가자.‘ 마루에 걸터앉아 한숨을 돌리려는데 글쎄 저만치 흰 고무신 한 짝이 나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쫓아가서 집어보니 이건 분명 아까 주웠다가 버린 그 신발과 같은 짝이 틀림없어 보였다. 신어보니 꼭 들어맞는다. 그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송아지를 정자 기둥에 매놓고는 쏜살같이 오던 길을 달려 내려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풀 섶에 던지지나 말걸, 여기쯤이 분명한데... 한참 만에 용케 고무신을 찾아들고는 한달음에 정자에 도착했으나 송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여러 해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받은 새경을 고무신 한 켤레와 바꾸고 말았다. 인간은 자주 하찮은 것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단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오늘 내가 들고 있는 고무신은 무엇인가? 무엇과 바꾼 것인가?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