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전문직의 길 위에 서 있던 한 사람이 있었다. 20년 가까이 수의사로 살아오며 동물의 생명을 돌보고 보호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그는, 어느 순간 질문을 품기 시작했다. “나는 이 직업으로만 충분한가.” 그 질문은 결국 한 권의 책으로, 한 편의 글로, 그리고 수많은 강연 무대로 이어졌다.
수의사이자 작가. 언뜻 어울리지 않는 두 정체성은 그의 삶 안에서 충돌이 아니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진료실에서 마주한 현실의 이야기들은 글의 재료가 되었고, 글을 통해 단련된 사고력과 문해력은 다시 전문직의 깊이를 더했다. 이제 그는 스스로를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타인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꿈을 묻기 전에 기준을 세우라고, 직업을 묻기 전에 정체성을 돌아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고독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라고 말한다. 문해력과 사고력이 곧 진로의 힘이 되는 시대, 인공지능과 급변하는 노동 환경 속에서 청소년과 어른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전문직의 현실, 꿈보다 중요한 기준, 문해력과 진로의 관계, 그리고 “평생 직업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메시지의 진짜 의미를 깊이 있게 풀어본다.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중심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그의 이야기는 단단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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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문직으로 살아오신 수의사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두 정체성은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언제부터 ‘직업을 넘어 생각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끼셨나요? |
수의사로 산 지 20년이 되어가고 작가로는 4년 차입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마흔 즈음,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이 계기가 되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책쓰기로 이어져 지금은 매년 책을 내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수의사로서 동물 건강을 돌보고 보호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은 참으로 보람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더 많은 곳에 쓰임 받기를 바랐습니다. 더 넓은 무대가 필요했죠. 글쓰기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줬습니다.
책을 통해 제 목소리를 내고,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일이 즐겁습니다. 제가 쓴 문장으로 타인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저의 자존감과 존재감을 높여줍니다.
수의사와 작가,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수의사로 일하며 겪은 경험이 좋은 글감이 되고, 작가에게 필요한 사고력·집중력·문해력은 수의사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서로 다른 페르소나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셈입니다.
솔직히 이제 제 정체성은 수의사보다 작가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쓰는 일이 좋고 오래 하고 싶습니다. 쓰는 삶을 살다 보니 좋아하는 일이 더 생겼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말하는 일, 즉 강연입니다. 다행히 제 적성과 체질에도 맞더군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평생 이 세 가지로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게 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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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흔히 수의사를 ‘안정적인 전문직’으로 인식합니다. 현장에서 느끼신 전문직의 현실은 어떤 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달랐나요? |
많은 분이 수의사를 돈 잘 벌고 화려한 직업으로만 생각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남부럽지 않은 소득을 올리며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수의사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수의사도 적지 않습니다.
동물병원 운영도 일종의 사업입니다. 잘되는 병원이 있는 반면, 여러 요인으로 매출에 압박을 느끼는 병원도 많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여느 사업과 마찬가지로 동물병원 운영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원장이 아닌 봉직 수의사도 나름의 고충이 있습니다. 일정 수준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일, 강도 높은 업무량 등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밝고 화려한 면만 있는 게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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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생들을 만나며 “무엇을 할까”보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많이 접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고민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
자신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경험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아니, 가볍게라도 생각해보면 다행인데 그조차 하지 않는 게 대다수 학생들입니다.
정체성.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런 질문을 수시로 자신에게 하고 답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문자답의 시간이죠.
그런데 자문자답은 언제 가능할까요? 친구와 놀 때? 게임할 때? 공부할 때? 불가능합니다. 혼자만의 시간, 즉 '고독'의 시간에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 말입니다. 자주 이 시간을 가지며 나를 성찰해야 정체성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정체성을 알아야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되고, 이를 알아야 목표가 서고, 목표가 서야 계획을 할 수 있고, 계획이 있어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죠. 이 고리의 출발점은 나의 정체성을 아는 겁니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히 자신의 방에 머물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고독을 즐길 줄 모르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학생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큽니다. 학교 공부, 학원 숙제에 치이느라 정신이 없고, 나 자신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죠. 학생들에게 숨 쉴 틈을 줘야 합니다. 어른들이 나서서 그런 시간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결국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모든 학생이 스스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자신의 꿈과 삶의 의미를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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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생님께서는 진로 선택에서 ‘꿈’보다 ‘기준’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세워야 할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앞의 답변과 일맥상통합니다. 보통 학생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의사가 되는 게 꿈이다",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다", "셰프가 되는 게 꿈이다".
물론 이것도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볼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 과연 진정 내가 원해서 정한 꿈인가? 혹시 부모님이 원해서, 남들이 좋다고 하니 따라서 정한 건 아닌가? 꿈을 정할 때 기준은 남이 아닌 '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을 때 꿈을 이뤄도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꿈을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으로 두는 게 더 좋습니다. 예컨대 '의사가 되는 것'보다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건강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싶다', '교사가 되는 것'보다 '남에게 나의 지식과 지혜를 나눠주는 일을 하고 싶다'. 이렇게 꿈을 동사형으로 두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늘어날 뿐 아니라 더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꿈을 설정할 땐 '나'를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그 중심은 곧 나의 인생관, 가치관, 철학,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나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세요. 그게 모든 일 중 가장 우선순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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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학생들의 생각과 잠재력을 끌어내는 게 아니라 교사의 생각과 정해진 정답을 주입시키는 교육 방식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씁쓸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릴 때 창의적이고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고 커가면서 그것들을 다 잃는다.“
획일화된 현재의 교육 방식은 구시대 유물입니다. 문제 일으키지 않고 말 잘 듣는 보통 사람, 평균적인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도입된 방식이죠. 이게 필요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잠재력, 매력, 창의력을 뽐낼 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 방식이 필요합니다.
교사가 칠판에 적는 것, 말하는 것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받아 적고 암기하고 그것을 정답지에 써내는 게 과연 학생을 위하는 교육일까요? 누가 더 많이 정확히 암기했나를 평가하는 게 올바른 시험일까요? 이건 이미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월등히 더 잘합니다. 인간이 굳이 애쓸 필요가 없는 일이죠.
학교는 더 이상 인풋만을 강요하는 곳이 되어선 안 됩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아웃풋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은 활발하게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토론식 수업으로 변해야 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도서관에서 시장통처럼 시끄럽게 토론을 주고받는 것처럼요.
오지선다형의 정해진 정답을 제출하는 형태의 시험 말고, 학생 개개인의 생각과 그 이유를 적어 내는 시험을 쳐야 합니다. 이렇게 바뀌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깊이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생각을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이게 제대로 된 교육입니다.
학생들을 대학 입학을 위해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라, 한 명 한 명 소중한 개별자로 대우해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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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생 직업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학생들에게는 위로가 되지만, 동시에 불안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
불안할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제도 김해의 한 기관에서 청소년 멘토링 강연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까지 다양한 학생이 있었죠. 그들에게도 강연 초반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예전엔 첫 직장에 입사 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정년퇴직 때까지 그 직장에 다니다 은퇴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평생 직장, 평생 직업 개념이 통용되던 시절이죠.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선생님을 보세요. 수의사 일도 하면서 작가 일도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 발달 속도가 매섭다 못해 무섭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많은 게 바뀌어 있죠.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많은 일자리가 이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 합니다. 이미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많은 기업에서 감원을 하고 있고, 신규 사원 채용은 줄고 있습니다. 지식의 유통기간이 짧아지듯 일자리의 유통기한도 짧아지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간의 기대수명은 계속 증가해 100세 시대도 옛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은퇴 후에도 생존을 위해 수십 년 일을 해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이 이러한데, 이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건 어리석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의 직업에 올인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버리세요. 여러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애 주기에 걸쳐 다양한 직업을 가지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지를 남기세요. '나는 이 일 아니면 절대 안 돼'가 아니라 '이 일도 할 수 있고 저 일도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세요. 다양한 일을 잘하려면 선제적으로 무엇이 필요할까요? 경험입니다. 많은 경험을 해봐야 이 일이 내게 맞는지 안 맞는지,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경험이 곧 재산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인공지능을 잘 활용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한다기보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일자리를 차지하는 세상이 됩니다.
AI 리터러시, 즉 인공지능 문해력은 인공지능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입니다. 이를 높이려면 일찍부터 다양한 인공지능을 써보고 장단점과 특징을 이해하여 내게 맞는 걸 잘 골라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역시 여기서도 경험입니다. 많이 써본 사람이 잘하는 건 당연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습니다. 학생들이 그 변화의 파도에 잘 올라타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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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최근 강연과 글에서 ‘문해력’과 ‘사고력’을 진로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셨습니다. 문해력이 낮아질수록 진로 선택에는 어떤 문제가 생긴다고 보시나요? |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문해력의 핵심은 '맥락'의 이해입니다. 이 내용이 왜 여기에 쓰여 있지? 저자는 왜 이런 말을 할까? 이 글이 쓰인 시대적, 상황적 배경은 무엇이지? 저자는 최종적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나는 저자의 핵심 메시지에 동의하나? 이런 질문을 가지며 글을 읽고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맥락 이해이고, 이게 곧 문해력입니다.
그런데 문해력은 글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인간관계, 삶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개념이에요. 모든 상황마다 맥락이라는 게 존재하니까요.
예컨대 친구가 내게 A라고 말했는데 나는 B라고 이해했다면? 오해가 생기거나 관계가 틀어집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내게 A라고 말했는데 나는 C라고 이해했다면? 불호령이 떨어지거나 인사고과에 마이너스를 받게 됩니다.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는데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나쁜 결과를 얻고 삶은 고달퍼집니다.
진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시험을 잘 봐야 진로 선택에 유리합니다. 어떤 과목이든 시험 문제를 잘 풀려면 일단 문제 자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문해력이 낮다면 문제의 의미,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으니 정답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로 선택 시 나에 대한 이해,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뤄져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에도 역시 문해력이 작동합니다.
독서, 글쓰기, 사유. 이 세 가지가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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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입시와 스펙 중심의 진로 조언이 여전히 강한 현실 속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꼭 해줘야 할 질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너는 지금 행복하니?" 라는 질문을 꼭 해주면 좋겠습니다.
만약 '네'라고 답한다면 다행입니다. 잘 살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아니오'라고 답한다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학업량이 많아서인지, 마음이 다친 일이 있었는지,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지, 억지로 부모가 시켜서 학원을 가는 것 때문인지, 부모나 교사의 등살에 떠밀려 원치 않는 진로를 선택해서 그런 건지 등.
한국 청소년의 자살률이 전 세계 1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입시를 목표로 한 교육 방식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 구조적 문제가 하루아침에 바뀌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조치 없이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서 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려주는 것입니다. 초연결사회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은 예전보다 더 단절된 세상입니다. 아이들은 고민을 쉽게 터놓고 말할 데가 없습니다. 이럴 때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지금 마음 상태가 어떤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게 먼저입니다. 진로 조언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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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러 차례의 청소년·성인 강연을 통해 느끼신 공통점이 있다면요. 세대와 직업을 넘어 모두가 비슷하게 흔들리는 지점은 어디라고 보시나요? |
흔히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스갯소리로 유혹의 나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40대가 되면 여러 이유로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들의 주된 고민은 이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야 하나? 안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공교롭게도 청소년 시기의 진로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 저 나이에 저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될까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자신이 원해서 일을 선택한 사람은 이런 걱정을 잘 하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떠밀려서, 성적이나 조건에 맞춰서 진로를 정한 사람이 주로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30대에는 일단 눈앞에 닥친 것만 보여서 앞만 보고 달립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죠. 40대가 되니 그제야 조금 여유가 생깁니다. 여유가 생기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죠. 지금 이 일을 내가 왜 하고 있는지,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계속하는 게 맞는 건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결론은 쉽게 나지 않습니다. 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죠. 원래 10대 20대에 했어야 할 고민인데 늦은 감이 많이 있습니다. 나에 대해 잘 모르면 이런 위기를 겪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는 찼고, 가정까지 있다면 이 고민의 난이도는 더 높아집니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능한 한 어릴 때부터 나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살고자 하는 모습을 그려봐야 합니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남에게 맡기면 안 됩니다. 부모님도 안 됩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헤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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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마지막으로, 아직 꿈이 없거나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고민하는 어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문장이 있다면요? |
학생들에게:
당장 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지금은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게 없을 수도 있어요. 다만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살지는 마세요.
인생을 주체적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아침에 부모님이 깨워서 일어나고, 학교 가라고 해서 가고, 학교에서 정해진 수업 시간에 공부하라고 하니까 앉아 있고, 학원 시간 되었으니 학원에 가고, 집에 와서 숙제 하라고 하니 하다가 자고. 이렇게 떠밀리는 삶을 살지는 말라는 겁니다.
어떤 걸 하더라도 나의 의지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내가 원해서 해야 해요. 내가 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학원도 내가 원한다면 가도록 하고. 이렇게 내 뜻대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습니다. 내일이 기대되고 설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른들에게:
학생들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실패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먼저 나서서 길을 알려주고 지시하는 건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봤을 때 그 길은 위험해, 아니야. 이 길로 가자. 이 길로 가야 해." 이건 결코 학생을 위하는 일이 아닙니다.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게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일입니다. 시행착오를 없애거나 줄여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되지만, 시행착오로 얻는 것 또한 많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비바람이 전혀 없이 자란 나무는 뿌리가 얕고 약해, 작은 바람이나 홍수에도 뿌리째 뽑힙니다. 하지만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나무는 뿌리가 깊고 튼튼해, 큰 바람과 홍수도 거뜬히 이겨냅니다. 학생들의 성장 과정에는 그런 비바람도 필요합니다.
그저 곁에서 믿어주고 지지해주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박근필
* 수의사
* 작가
* 박근필성장연구소 소장
* 저서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2023)
- 나는 매일 두 번 출근합니다 (2024)
-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2025)
- 방구석에서 혼자 읽는 직업 토크쇼 (2025, 공저)
* 청소년 직업 특강 외 다수 강연 출강
* 데일리벳 외 다수 매체 칼럼 게재(연재)
[대한민국교육신문 강영석]













